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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기타 되살리기 성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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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은 홍콩의 어느 고물상에서 썩어가던 Hamer Slammer시리즈라는 기타입니다. 물이 들어갔던 것인지 나사같은 금속부품이 모두 녹슬고 나무바디 속에서 부러져 있어서 뽑을 수도 없고 건드려봐야 일만 커지는 그런 상태였는데, 신통하게도 연주는 가능한 그런 기타였습니다. 나사가 녹이 심하게 슬어 있는 부분에는 목재 부분도 검게 썩어 있어서 손톱으로 누르면 타다 남은 재 같은 것이 나오는 상태입니다. 픽업 포켓은 넓혀져서 개조되어 있고요.
칠의 일부가 계속 뜯어져 나와서 옷에 달라붙거나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것을 LAZDEN 님의 자상한 격려에 마음이 혹해서 수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Hamer는 미국회사이긴 한데 80~90년대 Slammer 시리즈는 한국 제조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정도 수준의 기타를 아주 좋은 컨디션으로 골라서 중고로 구입해도 고생도 안하고 돈도 덜 들었을 텐데 괜히 일을 벌려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LAZDEN님이 바람을 넣으면서 격려해주신 덕분에 재미도 있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것만 끝내면 이런 짓은 다시는 안 해도 된다 하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뭐든 어딘가 녹슨 흔적이 보이면 그냥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펜더였어도 오래되면 무조건 빈티지라는 환상을 버려야 삶이 편해요.
공구 같은 것을 파는 가게에서 샌드페이퍼나 여러가지 도구를 사다가 칠을 약간 벗겨내 봤습니다. 역시 나사가 박혀 있던 자리 주변이 검게 썩어 있어요. 여기서 이 수리계획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한화로 2만원 정도의 도구를 구입한 상태였으므로 아까워서 좀 더 갈아보기로 합니다.
나무 속에 묻힌 채로 놔두기에는 찜찜한 녹슨 철조각들을 무식한 방법으로 모두 뽑아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해결방법 영상을 몇개 보기는 했는데 녹이 워낙 심해서 약해진 상태이므로 고급스런 멋진 방법으로는 안될 것 같고, 그런 방법은 필요한 도구들도 비싸고 하니 단순히 작은 구멍을 주변에 많이 뚫어서 계속 파내보기로 합니다.
구멍이 넓어졌으니 이번에는 다른 나무조각으로 메워서 고정하고요. 충분히 단단한 재료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IKEA 가구 조립할 때 쓰는 그런 나무조각을 사다가 깎아서 메웠습니다. 왠지 목공전문가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이라 올려봅니다.
픽업베드도 사이즈대로 다른 나무조각으로 메우고 강력한 접착제와 에폭시 퍼티로 굳힙니다. 셀렉터 스위치 주변에 검게 색이 변한곳은 모두 나무가 썩어있는 거예요. 모두 파내고 복원하기는 쉽지 않고 가능한 부분만 손댔습니다. 점점 일이 길어지고 샌드페이퍼나 이런저런 도구도 지출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불길한 시점입니다.
그래도 갈고 갈다보니 어느정도 깨끗한 나무 표면이 나왔습니다. 이 즈음해서 샌드페이퍼 작업을 너무 해서 손가락 지문이 없어졌습니다. 스마트폰을 지문인식으로 켤 수가 없어요.
네크를 고정하는 나사구멍 부분은 강도가 충분히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안함이 있는데 나무조각과 에폭시 퍼티로 메웠습니다.
군데군데 메운 곳도 있고, 썩어서 검게 변한 곳도 있고, 표면의 질감도 여기저기 차이가 있어서 아무래도 밝은 색은 어려울 겁니다. 전문가처럼 두껍게 도장할 수도 없으므로 검은색입니다. 색이 반짝거리면 반사면으로 뭔가 울퉁불퉁한 느낌이 보일 것 같아서 무광으로 샀습니다. 수성라커라고 써있는데 건조되면 방수기능이 있지만 칠할 때 냄새도 덜나고 마르기 전에는 금방 물로 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야산에 가서 뿌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발코니에서 큰 문제 없이 해냈어요. 이웃주민 아무도 냄새나 검은 안개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아랫집 발코니에 빨래 널어 놨든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네크가 부러질까봐 걱정돼서 나사를 하나 더 고정하기로 합니다. 나사 한봉지에 5개 들어 있어서 하나 남기도 하고요. 그래서 정확히 가운데에 구멍을 멋지게 뚫었는데 네크쪽에서 아무리 힘을 줘도 드릴 비트가 안들어갑니다. 한가운데에는 트러스로드라는게 들어 있으니까 당연히 안되는 거였어요. 자칫 무식하게 트러스로드 부러뜨리고 네크도 부러뜨리고 수리작업이 그대로 종료될 뻔 했어요.
어쨌든 나무조각으로 구멍을 메워서 수습하고 그 옆에 다시 뚫었습니다.
바디 뒤편에 뚜껑들도 아크릴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멋지게 전동드릴로 드르륵 나사로 고정하다가 아크릴판을 깨먹어서 투명테이프로 붙여서 다시 살살 나사로 고정한 상태입니다. 생각해보니 아크릴판은 잘 깨지는 거였죠.
이제 기타모양으로 조립이 거의 되어 갑니다. 샌딩을 하도 해서 기타 바디가 얇아진 만큼 부품들이 위로 상당히 돌출되었어요. 픽업은 LAZDEN님이 협찬해주신 BC Rich 험버커 2개를 일단 장착합니다. 흰색 픽업을 달고 싶어서 나중에 다시 교환하기는 했어요.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네크의 각도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고, 칠도 옷에 묻어나거나 그러지는 않고 좋네요. 자세히 보면 퍼티나 땜질자국이 보이기는 하지만 검은색 무광이라 티가 크게 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완성됐고 약간 연주도 해보고 있습니다.
모두들 오디오 인터페이스나 가상악기와 같은 전문적인 도구들을 이야기 하시는데 갑자기 고물기타 수리 이야기가 등장해서 당황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일하시는 도중 쉬어가는 글 정도로 읽어 주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