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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패설] <IN UTERO> 결핍의 편린 by Nirvana(1993) 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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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려보는 음반패설입니다.

음반패설은 제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eonsa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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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밴드는 단연 너바나였다. (당시에는 이들을 Nirvana의 산스크리트어 독음인 니르바나라고 읽는 분들도 꽤 많았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제 굳어져버린 '너바나'로 읽도록 하자) 또 내 음악적 영웅을 꼽으라 하면 망설이지 않고 커트 코베인을 첫 손가락에 들였다. 나의 사춘기는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걸쳐 있었고, 커트 코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994년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커트 코베인을 더 친근하고 안타깝게 여겼는 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청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 카디건을 걸치고 컨버스 원스타를 구겨 신곤 했다. 친구들은 누군지도 모르는 커트 코베인과 단지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서 말이다. 처음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하게 된 데도 너바나의 <MTV Unplugged in New York> 음반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무수한 촛불 속에서 읊조리는 그의 영상을 틀어놓고 나는 이 코드는 이리 짚고 저 코드는 저리 짚으며 악기를 뚱땅거렸다.

 

 한 밴드의 디스코그래피 수집을 완성한 것도 너바나가 처음이었다. 가장 유명했고 가장 처음 들었던 <Nevermind>를 필두로 해서, 초창기의 영세함이 묻어나는 (하지만 제일 환하게 빛나는) <Bleach>, <Incesticed>를 사 모았다. 영상으로 자주 접했던 <MTV Unplugged in New York>, <From The Muddy Banks Of The Wishkah> 까지 사고 나자, 당시 기준으로 내게 남은 것은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IN UTERO> 하나 뿐이었다. 밴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내 콜렉션의 마지막 조각이라니 묘한 우연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마지막 조각을 채우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로 학생 신분의 나는 돈이 없었고, 둘째로 내가 어찌어찌 어둠의 경로를 통해 <IN UTERO>의 mp3를 다운로드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었지만, 인터넷의 여명기. 사춘기 소년조차 손쉽게 불법으로 mp3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던, 당시는 그런 시대였다.

 

 mp3로 <IN UTERO>를 마르고 닳도록 듣던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음반을 구입했다. 마지막 음반이니 특별히 수입반으로. 반질반질 찐득찐득한 스티커를 조심스레 제거하고 나니 가슴이 벅차 올랐다. 여느때처럼 플레이어에 음반을 넣고 자리에 앉아 앨범 속지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mp3 파일 숫자보다 한 트랙이 적었다. 몇 번을 세어봐도 똑같았다. CD의 마지막 트랙은 ‘All Apologies’인데, mp3의 마지막 트랙은 ‘Gallons of Rubbing Alcohol Flow Through the Strip’라는 긴 제목의 곡이었다. 나는 백방으로 정보를 찾았고 결국 그 마지막 트랙은 미국 외 지역에서 판매 된 음반에만 특별 수록된 보너스 트랙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마지막을 특별함으로 장식하고 싶었던 나의 노력이 결국 마이너스로 돌아온 것이다. 헛웃음이 나오고 화가 났지만 별 수 있으랴. 나는 결국 내 mp3의 구성과는 다른 음반의 구성에 익숙해지기로 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요즘 생각으로는, ‘All Apologies’로 앨범을 마무리 짓는 이 수입반의 트랙 구성이 썩 나쁘지 않다. 그 밝고 슬픈 노래가 끝난 뒤 서서히 감속하는 CD의 모습에서 평화를 느낀다. CD가 회전을 멈추며 내는 마찰음도 좋다. 마치 한 세계의 종말을 알리는 작은 알람 같다. 내가 여태껏 CD를 즐겨 듣는 까닭은 바로 그런 사소한 현실감 때문이 아닐까? ‘Gallons of Rubbing Alcohol Flow Through the Strip’도 역시 훌륭한 곡이지만, 그 히든 트랙에 도달하기까지 20분 넘게 돌아갈 CD의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 안쓰럽다.

 

 <IN UTERO>는 두말할 것 없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껴듣는 너바나의 앨범이다. ‘Dumb’, ‘Heart-Shaped Box’, ‘Pennyroyal Tea’와 앞서 언급한 ‘All Apologies’ 등 명곡들이 산재해 있어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앨범에서 좋아하는 요소는 음반을 관통하는 답답한 사운드이다. 어딘가 갇혀있는 듯 좁게 울리는 사운드.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답답한 <IN UTERO>의 음색을 들으며 유일하고 무이한 감각을 느낀다. 너바나의 최고 히트작 <Nevermind>의 화사한 사운드에서와는 전혀 다른, 산만함과 너저분함을 느낀다. 개어 놓지 않은 빨래와 먼지구덩이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만 같다. 그 답답함의 어딘가에 커트 코베인이 빠져있던 우울과 고통, 결핍의 편린이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번 앨범을 들을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20년째 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여러 정보를 얻기 쉬워진 나중에 알고보니, 커트 코베인은 완성된 앨범의 사운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온 방에 걸쳐서 꽉 차도록 마이크를 썼다던가, 심지어 룸 밖에도 마이크를 놓았다던가 하는 야사에서 추측컨데, 최초에 그들이 의도한 사운드대로 앨범이 발매되었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좋지 않은) 공간음을 들을 수 있었을 듯 하다. 커트 코베인이 요절하는 바람에, 그가 최초에 의도해을 더욱 답답한 <IN UTERO>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알겠나? 먼 미래에 돈이 필요한 누구들이 다시금 커트 코베인을 관짝에서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그런 역사가 반복되었던 덕분에, 완성형이었던 내 너바나 음반 컬렉션은 언젠가부터 미완의 형태로 돌아와버렸다. 


Duration  41:23

Release Date   September 21, 1993

Recording Date February 1993

Recording Location Pachyderm Recording Studios, Cannon Falls, Minnes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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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코베인은 <IN UTERO> 발매 후 몇 개월 뒤에 자살했다. 향년 27세의 나이였다.  

- 생전 커트 코베인은 그림도 더러 그렸다.  앨범의 커버도 그가 그린 것인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가 그린 기괴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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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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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더님의 댓글

오래간만에 올라온 음반패설 시리즈네요!
잘 봤습니다.
번외편으로 언젠가 '반' 대신에 '담'이 한번 올라올 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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