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패설] <Go!> by Dexter Gordon (1962) 자유광장
컨텐츠 정보
- 5,539 조회
- 8 댓글
- 6 추천
-
목록으로
본문
** 안녕하세요 한치입니다. 몇년 전부터 그 동안 수집해 온 음반들에 대한 제 추억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동기부여를 위해 앞으로 정기적인 느낌의 비정기적으로, 써둔 글들을 스원포코에 업로드 해두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Dexter Gordon
Go!
1962
도구를 신체의 연장이라고들 하는데, 색소폰은 입을 연장하는 도구로서 제격인 악기이다. 연주자의 성격과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은 모든 악기의 공통점이지만, 연주자의 숨결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악기는 특별하며 그 중에서도 색소폰은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다. 아주 작은 떨림에서부터 거대한 울림까지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나믹 레인지, 주법과 입모양, 심지어 주자의 두상과 골격에서도 영향을 받아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음색. 색소폰이 재즈를 대표하는 악기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색소폰을 대표하는 재즈 앨범으로는 무엇을 꼽아야 할까?
20대 후반, 레코딩 엔지니어로서의 공부에 매진하던 나는 아카데미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가벼운 밤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CDP에 헤드폰을 눌러쓰고 마로니에 공원 맞은 편 학림 다방 앞에서 출발하여 서울대학교 병원, 창경궁의 명정문, 창덕궁 인정문을 지나 안국역으로 이르는 여정. 딱히 집으로 가는 길도 아니었고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걱정이 많고 에너지가 넘쳤던 당시의 나에게는 소중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 어느 날엔가 들었던 앨범 중 Dexter Gordon의 <Go!>가 있었다. 창경궁에서 창덕궁을 넘어가는 어느 지점에선가 <Where Are You?>를 듣는 중이었는데, 색소폰 소리가 헤드폰 밖으로 퍼져나가 밤공기를 물들이는 듯 했다. 그 색은 점점 진해져 까만 밤 하늘을 더 까맣게 칠하고 덧칠했고 나는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진한 감동에 질식했달까?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 날은 인정문 앞 벤치에 앉아 열대야의 매미 소리를 곁들여 <Go!>를 한번 더 집중해 들은 뒤에야 안국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을 산 이유를 물어본다면 첫째로 유명한 음반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로 커버가 예뻤다는 것이다. 블루노트 음반들의 커버가 으레 그렇듯 지금 보아도 유려하고 깔끔한 디자인과, 커버 만큼이나 모던하고 젠틀한 음악이 깔끔하게 담긴, 평소에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자주 듣던 음반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 날 이후, 나는 ‘대체 이걸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좋은가? 나의 대답은 ‘색소폰의 양감 때문’이다.
색소폰에 양감이라니?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Dexter Gordon의 색소폰에는 분명 꽉찬 부피, 무거운 무게, ‘양감’이 존재한다. 비브라토를 다소 배제한 채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그 묵직한 질감. 마치 검고 굵은 마커로 거침없이 써나가는 글씨 같다. 그런데 그냥 굵고 크기만한 소리도 아니다. 중간중간 스며들어 있는 서브톤(Subtone, 숨소리가 섞인 색소폰 톤) 역시 기가 막히다. Stan Getz나 Ben Webster가 들려주는 날아갈 듯한 그런 서브톤은 아니지만, 선 굵고 호탕한 연주에 살짝씩 섞이는 은근한 그의 서브톤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만약 이 서브톤이 없었다면 Dexter Gordon의 연주는 다소 마초적이고 경박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 서브톤 덕분에 그의 연주가 풀정장을 갖춰 입은 신사처럼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냥 검은 색 글씨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그 마커의 색이 까마귀의 검은 깃털처럼 온갖 색을 품은 검은 색이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연주 도처에서 들리는 유머 감각이다. 그의 특기는 음악적 ‘인용’인데, 앨범을 듣는 동안 그의 연주 곧곧에서 익숙한 주제를 들을 수 있다. 세번째 곡 <Second Balcony Jump>의 아웃로와 <Three O’Clock in the Moring>에서 인트로를 들으면 누구나 ‘어!?’하고 반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뜻 그냥 장난스럽게 치부될 수 있는 이러한 시도들도, Dexter Gordon과 세션맨들의 훌륭한 연주로 ‘유머’로 승화되어 있다. 덕분에 본 앨범은 비밥, 하드밥의 명반으로서 자리매김하면서도 어렵지가 않다. 미소를 짓게하는 재즈앨범, 행복감을 주는 재즈 앨범이라니! 길이남아 마땅하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Dexter Gordon의 키는 6피트 6인치, 약 2미터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의 연주가 크고 무게있게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커버에는 분명 ‘GO’라고만 적혀있는데 모두들 ‘Go!’라고 쓴다. 왜일까?
Release Date 1962
Recording Date August 27, 1962
Recording Location New York, NY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