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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패설] <Automatic for the People> by R.E.M (1992) 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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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치입니다. 몇년 전부터 그 동안 수집해 온 음반들에 대한 제 추억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동기부여를 위해 앞으로 정기적인 느낌의 비정기적으로, 써둔 글들을 스원포코에 업로드 해두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음반패설은 제 브런치를 통해서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eonsansil
나는 미국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미국이 싫은 것은 아니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니다. 그저 미국식 인간관계가 나와는 영 맞지 않는달까? 처음 본 사람과도 통성명을 해야하고, 친한 척 노력해야하며, 과장 섞인 억양과 제스쳐를 곁들여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나는 그저 물건을 사러 갔을 뿐인데 어디서 왔냐고 먼저 묻는 점원들과, 더이상 상대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날 샌디에이고의 한 레코드점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덥수룩한 흰수염에 안경과 빵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그 레코드 가게는 척 보기에도 노포여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그 할아버지 주인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컴퓨터도 보이지 않는 책상에서 그는 노트에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이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무관심이 오히려 편안했다.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도 저마다의 음반들을 앞에 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진이 나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자세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바닥에 널린 중고 CD 박스 앞에 자리를 잡았다. 폐 속 가득 먼지를 마시며 그 것들을 뒤적이는 일은 레코드점 쇼핑 만의 재미다. 세월을 낚는다는 낚시의 기분이 그러할까? 특별히 찾는 물건도 없이, 돌아갈 시간도 신경쓰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헤집다보면, 몇몇 녀석들이 걸려들게 마련이다.
고심 끝에 Grand Funk Railroad 의 <Shinin’On>과 De La Soul 의 베스트 앨범, 그리고 R.E.M.의 <Automatic for the People>을 계산대로 들이밀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불편하고 정겨워 보이는 종이 장부에 또 무언가 기록하더니 갑자기 내게 말했다.
“사진의 별은 어느 모텔 건물에 달려 있던 거야”
그리고 그는 <Shinin’On> 앨범 속지에서 안경을 잘라내면, 커버를 3D로 감상할 수 있다며 손으로 안경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또, De La Soul의 컴필레이션 CD를 들고는 ‘저 쪽에 개별 앨범도 있는데 사지 않을래?’ 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미국에 여행와서 가장 진심으로 파안대소를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모자 쓴 백발의 안경잡이 할아버지도 함께 웃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웃돈도 얹어 그 음반들을 샀다.
남은 일정 내내 <Automatic for the People>을 차 안의 CD 플레이어에 걸어두었다. 첫 곡의 제목부터 <Drive>였다. 어쿠스틱 기타가 스산히 울려퍼지는 인트로. 앨범을 지배하는 사운드는 바로 그 철로 된 현의 까칠함이다. 그러나 그 까칠함이 연주하는 음악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사막의 황량한 풍광이 끝없이 펼쳐지는 미 서부 도로를 여행하면서 듣기에는 그만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아내가 옛날 샌디에이고에 있을 때 다녔다는 학교도 찾아 갔다. 그렇게나 좋아했다는 단골 타코집의 요리도 먹었다. 아내는 웃으며 그 때만큼 맛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흐르던 곡은 <Everybody Hurts>. 나는 아내에게 언젠가 봤던 그 곡의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했고, 차가 밀리면 그 뮤직비디오에서처럼 차에서 내려 걸어가자고 실없는 소리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는 전혀 밀리지 않았고, 우리는 서로 웃으며 즐거웠다.
라스베이거스에서 LA로 장시간 밤 운전을 하면서 <Nightswimming>을 들었던 순간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2차선으로 된 도로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고, 나는 오직 상향등에만 의지하여 천지구분도 되지 않는 어둠 속을 달렸다. <Nightswimming>을 들으며 심해를 유영하는 잠수정을 운전하는 상상을 했다. 이따금씩 지나치는 커다란 트럭들을 고래나 상어라고 여기며.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LA의 호텔에서 떠나며, 깜빡 잊고 호텔 직원에게 팁을 주지 못했다. 그 직원은 욕설을 하며 우리 차 트렁크를 걷어 찼다. 그제서야 미국과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앨범, <Automatic for the People>을 들으며 그 해의 미국을 생각한다. 그 날의 레코드 점과, 그 여정을 떠올린다. 겉으로 보이는 미국 사람들의 상냥함 속에 감춰진 어둡고 개인적인 내면을 추측한다. 그 내면들이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들의 솔직한 모습들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Release Date October 6, 1992
Recording Location Bearsville Sound Studios, New York, NY / Bearsville Studio, Beatsville, NY / Bosstown Recording Studios, Atlanta, GA / Criteria Recording Studios, Miami, FL / John Keane's Studio, Athens, GA / Kingsway Studio, New Orleans, LA
- Kurt Cobain이 사망할 당시 이 앨범을 듣고 있던 정황이 있었다고 한다.
- 수록곡 중 <Man on the Moon> 은 미국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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