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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패설] <사랑하기 때문에> by 유재하 (1987) 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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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치입니다. 몇년 전부터 그 동안 수집해 온 음반들에 대한 제 추억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동기부여를 위해 앞으로 정기적인 느낌의 비정기적으로, 써둔 글들을 스원포코에 업로드 해두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음반패설의 더 많은 글은 제 브런치를 통해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eonsa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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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나의 모교 노천 극장 근처를 지나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의 현수막을 본 기억이 있다. 유재하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들어보았는데, 그를 위한 음악 경연대회가 있는 것은 몰랐다. 알고보니 그는 나와 같은 학교의 작곡과를 다닌 타과 선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잠깐의 흥미 이후 유재하라는 이름은 다시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버렸다.


 그 뒤 나는 군대에 갔고, 2년 뒤 학교를 잠깐 다니다 휴학을 해버리고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화성학과 시창 수업도 신청해 비전공자의 한계를 극복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루는, 화성학 수업을 위해 받은 리드 시트의 위쪽에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제목과 ‘유재하’라는 이름 석자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수업에서 만난 군대 이전의 기억. 저 멀리 사라진 것만 같았던 반가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통해, 나는 유재하의 음악을 음원으로서가 아니라 강의 주제로서 처음 만났다. 화성학 시간에 피아노 연주곡으로 울려퍼진 <사랑하기 때문에>가 내 고막을 울린 첫 번째 <사랑하기 때문에>였다. 어딘가 억울한 일인 듯도 했지만 그 것은 또 그 것대로 운치가 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중가요로서 <사랑하기 때문에>의 화성학적인 성취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그 음악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1987년. 이 앨범은 내가 태어난 지 1년 뒤에 발매되었다. 나는 성인이 되고도 한참 뒤에야 이 음반을 처음 찾아 들었다. 향년 스물 다섯에 하늘로 가버린 청년의 음악을 20여년 뒤 20대 중반의 내가 만나다니! 심지어 내 생일과 발매일 간의 차이도 딱 4일이다. 혼자 일기장에 적어 놓고 싶은 재미있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나와 같은 나이에 이토록 빛났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걸까?


 첫 회사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이 앨범을 듣다가 <가리워진 길>을 몇번씩 반복해 듣는 습관이 있었다. 내일이 불투명했던 시절.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는, 그대여 힘이 되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적막하고 깜깜한 방안에 울려퍼지는 유재하의 어눌한 목소리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울림이었다. 


나는 노래방에 가서도 <가리워진 길>과 <사랑했기 때문에>를 종종 불렀다. 불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재하의 노래들을 잘 부르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의 노래는 커버가 불가능한 오리지널리티를 지니고 있다. 작금의 AI들이 작고한 뮤지션들의 목소리를 현세에 부활시키고 있지만, 나는 왠지 유재하의 목소리만큼은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유재하는 유재하의 노래를 썼다. 잘 부르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유재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훌륭하게 부를 수는 있어도 그를 제외한 누구도 ‘잘 부를 수 없는’ 음악.


 내가 AI가 유재하를 따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는 근거는 또 있다. 바로 유재하가 남긴 음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I에게 유재하의 목소리를 학습시키려해도, 가르칠 소스의 수 자체가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유재하가 남긴 솔로 음반은 오직 이 <사랑하기 때문에> 뿐이다.


 요절한 천재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슬프고 그리운 일이지만, 유재하를 이야기 할 때면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가장 강하게 든다. 단 한 장의 음반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한번에 고작 약 37분. 고인에게 할 소리는 아니겠지만, 가끔은 너무했다고 원망이라도 하고싶다. 커트 코베인도 정규 앨범을 3개나 냈었고, 광석이 형도 현식이 형도 세상에 있는 동안 만큼은 그래도 꽤 많은 음악들을 남겼거늘. 발자국을 아무리 크게 남겼기로서니 걸음 걸이도 그렇게 빨랐어야 했나 싶다.  


Release Date   August 20, 1987

Recording Location Seoul Studio (Seoul, Republic of Korea)

- <사랑했기 때문에>은 판본이 많은 편이다. 리마스터도 3번이나 거쳤다. 혹자는 판본마다 음질과 편집이 다르다고도 하는데, 필자가 직접 확인해본 적은 없다. 혹시 음반 하나 만을 남기고 떠난 뮤지션을 추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본다.  

- 2022년 1월 28일 티빙 오리지널 <얼라이브> 프로그램을 통해서 AI기술을 활용한 유재하의 공연이 방송되었다. 다행히(?) 유재하의 목소리가 아닌 공연 모습만을 재현한 것이었다. 언젠가 내 예측을 깨고 진짜로 그럴듯한 AI 유재하가 나타난다면, 그 경우에는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복잡한 감정이 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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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님의 댓글

87년 초판 CD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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