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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패설] <다시부르기 1> by 김광석 (1993) 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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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한치입니다. 몇년 전부터 그 동안 수집해 온 음반들에 대한 제 추억들을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동기부여를 위해 앞으로 정기적인 느낌의 비정기적으로, 써둔 글들을 스원포코에 업로드 해두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음반패설은 제 브런치를 통해서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jeonsan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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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광석은 ‘형’으로 부르고 싶은 유일한 뮤지션이다. 1964년생인 그가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의 삼촌 뻘 연배가 되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뉴스로 김광석의 부고를 접했다. 1996년. 그의 나이 향년 31세였다. 불행히도 그것이 광석이형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그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어린, 가끔 이불에 실수도 하고 마는 꼬마에 불과했다. 그 꼬마에게 김광석의 죽음은 그저 뉴스 속 지나가는 죽음 중 하나로 잊혀졌다.


 시간이 흘러, 노스트라다무스가 종말을 예언한 불안했던 1999년도 지나고, 밀레니엄 버그의 흉흉한 소문 속에 서기 2000년이 찾아왔다. 그 해에 나는 친구들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았다. 지금도 한국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이기에, 그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겠다. 여기서는 그저 남북한 군인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라고 줄여도 그만이다. 극 중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던 북한군 중사는 한숨을 쉰다.


 “아, 오마니 생각나는구먼.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대니?”


 비극적인 결말과 음악, 그리고 송강호의 이 대사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 가슴 속에서 웅얼거렸다. 초등학생 시절 뉴스로 본 그의 죽음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도 속으로 ‘왜 그렇게 일찍 죽었어요?’ 물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나는 종종 광석이형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의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을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수능을 코 앞에 둔 그 시절, 나의 CD케이스 한 칸에는 거의 매일 <다시부르기 1>이 꽂혀있었다. 평소 나에게서 CD를 빌려듣던 친구들도 <다시부르기 1>을 보면 ‘또냐?’면서 진절머리를 냈다. 그 만큼 마르고 닳도록 광석이형을 들었다. 우습게도 그 시절 나는 <이등병의 편지>를 제일 좋아했다. 스무살도 안 된 고삐리가 공감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정작 군대에 가기 직전에는 엉뚱하게도 <서른 즈음에>를 즐겨 들었다. 군대 가기 며칠 전, 동아리 방에 남은 내 짐을 다 정리하고 홀로 그 곳에서 밤을 샜다. 동방 앰프로 틀어놓은 ‘또 하루 멀어져간다’는 그 씁쓸함을 <기다려줘>로 달랜 기억이 생생하다.


 군 시절 만난 모 대위는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하여, 가끔 나를 불러 함께 기타를 치고 놀았다. 그가 편하게 하라고 말했지만 결코 편할 수 없었던 그 합주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즐겼던 순간은 광석이형의 노래를 부를 때였다. 대위는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말하지 못한 내 사랑>를 좋아했다. <다시부르기 1>로 자주 들었던 그 노래들을 연주하며, 나는 잠시나마 군 생활의 피로를 잊었다.


 복학생이 되고 그리운 선후배들과 재회하고나서는, 그들과 함께 광석이형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왕십리 좌판에서 <그루터기>와 <광야에서>를 합창했던 적도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시끄럽다고 눈치를 주면서도, 왠일인지 기본 안주를 한 접시 더 챙겨주었다. <광야에서>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민중가요이다.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 슬퍼했다. 지금 내 아내 된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했던 그 시점에 벌써 이별을 염려하고 슬퍼했다.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이상한 취향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게 광석이형의 노래는 마치 친한 형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먼저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따뜻한 다독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는 내 과거에 대한 꾸짖음도, 내 미래에 대한 위협도 없다. 그저 푸근한 미소만이 존재한다. <다시부르기 1>의 커버 아트와 같은, ‘형님’이 아닌 ‘형’의 미소다.


 이제 내 나이는 세상을 떠날 때의 광석이형의 나이보다 몇 살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김광석을 광석이형이라 부를 것이다. 위로 받을 날들과 웃을 날들. <그 날들> 속에서 그는 언제까지나 나의 형이다. 먼 훗날 나이를 먹어 ‘어느 60대 노부부’가 되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광석이형을 부르고 다시 부를 것이다. 


Release Date   March 2, 1993

Recording Location Garak Studio (Seoul, Republic of Korea)


- <광야에서>는 김광석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를 ‘다시 부른’ 것이다.  

- 김광석의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 <사랑이야기>와 <인생이야기>도 찾아 들어볼 것을 권한다. 녹음 상태는 좋지 못하지만, 김광석의 음악을 가장 당대의 감성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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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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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님의 댓글

가객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몇 안되는 가수분들 중 한 분이죠.
사랑해~ㅆ지만~
한창 따라불렀었던 기억도 나고, 30꺽일 때면 꼭 불러보는 서른 즈음에,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이등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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